본문 바로가기
Books

경제서적/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다

by KTC_Dong 2021. 7. 20.

 

장하준 지음, 부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377014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전문 지식 없이도 경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나쁜 사마리아인들>로 주목을 받았던 장하준 교수가 들려주는 자본주의 이야기『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

book.naver.com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소개되었던 도서이다. 전공 관련 도서이자 우연하게 접한 책이기에 읽고 싶었다. 이 책의 저자이자 케임브리지 대학교수인 장하준 교수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 못했고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 이번 책을 통해서 첫 만남을 가진 셈이다.

 

이 책은 학부 시절 읽었던 경제학 이론서와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이론서의 뒷부분에 나올 법한 비주류 경제학 분야를 전면적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겨우 학부 수준의 경제학을 경험했지만 이 책은 시카고학파로 대표되는 기존 경제학 주류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바로 자유 시장 경제학을 전면으로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설명과 논리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근거가 빈약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책을 통해 느낀 바는 명확하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통념들에 의문점을 던져보자. 질문을 하고 비판을 하며 주체적으로 이해하자" 사실 그가 설명하는 자유 시장 경제의 허점과 이를 보완해 줄 그의 구상안들은 곧 뇌리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전달해 준 핵심인 '비판적 수용의 태도' 하나만은 반드시 기억하고 싶다.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이렇게 이해했다. "자유로운 시장에서 합리적인 인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소리다. 시장이라는 메커니즘은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될 수 있다. 시장에 모든 문제를 맡겨 해결한다는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숨긴 해법일 뿐이다. 결국 국가 및 기업의 성장을 이끄는 동력이 완전하게 자유로운 시장뿐이었다고 믿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물론 나의 이해가 올바르지 않을 수도 있다.

 

 개발도상국이 선진국과 국제기구의 원조(예를 들어, 구조조정프로그램(SAP)이나 빈곤감축전략계획(PRSP))를 받는 조건으로 자유 무역 시장과 금융 개방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점은 개도국들로 하여금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다. 선진국 역시도 과거에는 자유 무역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했고 자국 유치산업들을 성숙시킨 뒤 부자가 된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흔히 나쁜 정책(보호주의, 보조금 규제, 산업의 국유화)를 사실 선진국들이 앞다투어 사용했던 셈이다. 이 책에서 정부가 제도를 통해 산업 및 기업 육성에 관여하는 것이 적합할 수 있다는 점을 세 가지 근거를 들어 설명한다. 첫 번째, 해밀턴의 유치산업론이다. 자국 기업들이 도움 없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능력을 갖출 때까지 유치산업을 보호,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두 번째, 시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미비한 운송수단, 원활하지 못한 정보 흐름, 큰 손들이 조작하기 쉬운 작은 규모 등의 상황을 의미한다. 세 번째, 정부가 국영 기업을 통해 다수의 일을 직접 하는 것이 적합할 때이다. 대규모 고위험 프로젝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아프리카 지역의 성장을 짓누르는 장애 요인이 그들이 가진 '구조적 요인'이 아니라 정책,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강요하는 자유무역, 자유시장 정책이라는 주장은 어느 정도 공감이 된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모든 근거가 다 납득이 가는 것은 아니지만 구조적 장애요인(기후조건, 지리적 조건, 낙후된 이웃 국가, 자원의 저주, 민족적 구성, 낙후된 제도) 때문에 아프리카의 경제 성장이 온전히 가로막힌다고 보기도 어렵다. 선진국들도 이와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총, 균, 쇠> 책에서 과거 문명의 발전은 단순히 그 지역의 사람들이 우수하기 때문이 아니라 가축화와 경작화할 수 있는 조건들을 일찍 접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이는 문명 발전의 속도를 결정짓고 지배-피지배의 역사를 구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피지배의 역사를 가진 지역 내 사람들이 결코 미개해서가 아니다. 그들 역시도 충분히 시간이 보장되었다면 지배 문명국과 유사한 역사의 수순을 밟았을 것이다. <총, 균, 쇠>를 토대로 아프리카 저성장의 역사를 이해해 본다면 그들이 구조적 요인에 의한 영구적 결함을 보유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 역시도 자유 시장에 놓이기 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자국 산업과 기업을 충분히 육성할 수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저성장의 늪을 경험하지 않았을 수 있다.


 이 책은 굉장히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즐비해 있다.

 

부자 나라의 일부 개인이 가난한 나라의 동일 직종 종사자에 비해 생산성이 수백 배나 높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머리가 더 좋다거나 교육을 더 잘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더 나은 기술, 더 나은 조직, 더 나은 제도와 물리적 인프라를 가진 경제 환경에서 살기에 그런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P.55

 

자유 시장 경제학에서는 어떤 상품이 대체될 수 있는 다른 제품에 비해 값이 비싸다는 것은 그것이 더 나은 상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부자 나라의 노동자가 가난한 나라의 동종 노동자에 비해 더 높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은 임금 차이만큼의 생산성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통제된 이민 정책 덕분이라고 이 책은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단지 지금 이 순간 우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인터넷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 p.65(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이 대목을 인용한 것은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과거를 돌아볼 때 망원경을 거꾸로 뒤집은 채 보지 말아야 한다"라고 전한다. 또, "인간은 본래 가장 최신의 기술이자 가장 눈에 띄는 기술에 현혹되는 경향이 있다", "최근의 것에만 사로잡혀 이제는 보편화된 것들을 저평가할 경우 과거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여러 가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위험이 있다"라고 전한다. 혹시 이런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씩 점검해 볼 굉장히 유용한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 정책 패키지로도 알려진 자유 시장 정책 패키지의 일련의 정책들은 낮은 인플레이션, 자유로운 자본 이동, 그리고 (노동 시장 유연성이라는 미사여구로 표현되는) 높은 고용 불안정성 등을 중시한다. p.92 (거시 경제의 안정은 세계 경제의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앞서 설명했듯이 이 책은 자유 시장 경제학을 전면적으로 비판한다. 정책 패키지의 산물인 낮은 인플레이션, 자유로운 자본 이동, 높은 고용 불안정성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물론 전부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먼저, 인플레이션 억제를 강조하는 것은 금융 자산 수익이 대부분 명목상 고정되어 물가가 상승할 경우 수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해당 정책 입안은 금융 자산 보유자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금융자산은 물적, 인적 자산보다 더 신속하게 이동시킬 수 있기에 다른 자산보다 더 높은 이윤을 낼 수 있다. 이런 장점 덕분에 자본 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세 번째,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주장하는 이유는 고용 및 해고 절차를 용이하게 만듦으로써 구조조정이 더 쉬워져서 더 보기 좋은 대차대조표를 만들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서 기업 매매가 원활해져 금융 수익을 올릴 장점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기심이 가장 중요한 동기일지는 모르나 유일한 동기라 할 수는 없다. 정직성, 자존심, 이타심, 사랑, 연민, 신앙심, 의무감, 의리, 충성심, 공중도덕, 애국심 등은 모두 우리의 행동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p.74 (5. 최악을 예상하면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인간의 경제적 동기에 대해서 이기심만이 전부가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설명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다고 생각한다.

인간 내적 동기가 다양함을 인정할 때 더 생산적인 경영 방식이 나온다. 예를 들어, 과거 초기 산업 시대에는 대량 생산 방식을 추구하였는데 노동자들의 창의성, 자율성은 배제한 채 업무의 효율과 속도만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도요타 방식은 노동자들에게 책임감을 부여하고 선의와 창의성을 북돋아 주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자유시장 경제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정부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고 사람들이 자기 비즈니스를 스스로 책임지도록 놔둘 때 가장 성공한다. 정부가 내리는 결정은 기업을 운영하는 당사자가 내리는 결정에 비해 항상 열등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당사자들이 정부보다 필요한 정보를 더 많이, 더 효과적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p.175(12. 정부도 유망주를 고를 수 있다)

 

1960년대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출자한 콩고드 프로젝트의 실패 사례는 위의 설명을 충실하게 뒤받쳐준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두 가지 근거를 들어 정부가 기업 의사 결정권자에 비해 유망한 산업 및 기업을 선정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반박한다.

첫 번째, 위의 설명은 애초에 잘못된 가정에 출발한다는 것이다. 즉,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좋다고 좋은 판단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오히려 정부가 산업 정책을 펴는 데 필요한 정보라고 판단하면 그 정보를 확보할 능력이 있다.

두 번째, 기업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 기업가들의 판단이 자기 기업에 더욱 유리할 수 있지만 국가 사회 전체적 관점에서는 더 나은 결과가 아닐 수 있다. 예시로 과거 LG가 섬유 사업이 자사의 수익성에 유리하다고 판단을 했지만 정부가 전선 사업에 진출할 것을 강요한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단기적 관점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국가 및 기업에 유리한 선택이었다.

 

또, 이 책은 가장 성공적인 유망주 선발은 기업과 정부가 협력해서 선택했을 때라고 덧붙인다.

 

앞서 설명한 주제 이외에도 자유 시장 경제학의 트리클다운 이론을 비판하고,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을 인정하며 큰 정부의 역할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오히려 규제의 효용성은 행위의 복잡성을 제한해서 피규제자들이 보다 나은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는 데 있다. p.235(16. 우리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도 될 정도로 영리하지 못하다)

이는 인간의 제한된 정신적 능력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부분이다. 행동 경제학과도 접점이 되는 부분이다. 과거 경제학이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로 내세웠지만 현실에서는 인간의 완전한 합리성은 말 그대로 환상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온전한 자유에 내맡겨진 인간이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완전한 자유보다는 적절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몇 가지 보기를 제시하여 선택을 하지 못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과한 규제가 실제로 기업 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는 규제를 통해서 부의 외부성을 억제할 수 있고 이는 모든 기업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어류를 포획하는 데 제한을 둠으로써 어종의 수를 조절하고, 수질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 결국에 어부는 물론이고 어업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다. 또한 규제가 외부성을 억제하는 기능 이외에도 산업 부분의 집단적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 조치를 강제로 취하게 하는 기능도 있다.


마지막으로, 장하준 교수의 8가지 결론을 정리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세계 경제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

 

1) 자본주의는 나쁜 경제 시스템이다. 문제는 다른 모든 시스템이 더 나쁘다는 것이지만.

아무런 규제도 가하지 않는 것이 그것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모두에게 맞는 하나의 경제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에 대한 맹목적 사랑에서 눈을 떠, 더 잘 규제된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를 해야 한다.

 

2) 인간의 합리성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는 인식 위에서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3) 인간이 이기심 없는 천사가 아니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나쁜 면보다 좋은 면을 발휘하게 하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4) 사람들이 항상 '받아 마땅한' 만큼 보수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앞서 보았듯이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은 개인적 자질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자기 나라의 경제 시스템과 선진국의 이민 정책 때문이다.

 

5) '물건 만들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바로 자본주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은 장기투자와 생산구조를 바꾸는 기술 혁신이지, 풍선을 부풀리듯 이미 존재하는 구조를 팽창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탈산업화 지식 사회는 신화에 불과하고, 제조업은 지금도 경제에 필수적이다.

 

6) 금융부문과 실물 부문이 더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금융은 속성상 실물 자산에 유동성을 부여함으로써 자원을 신속하게 재배분할 수 있도록 한다. 금융 부문의 속도를 늦춰 두 부문 간 시차를 메워줘야 실질적인 경제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7) 더 크고 더 적극적인 정부가 필요하다.

정부의 역할이 위기관리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정부는 풍요롭고 평등하며 안정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데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 성장과 형평 간의 상충 논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경우 거대한 복지 국가와 높은 경제 성장률이 공존하고 있는데 이는 작은 정부가 항상 성장에 이롭다는 믿음에 문제가 있음을 잘 드러내 주는 예들이다.

연구개발, 노동자 훈련 등 시장이 제대로 하지 못하는 투입물의 공급을 늘리고, 사회적 수익은 높지만 사적인 수익은 높지 않은 사업의 위험을 분담하며, 후진국의 경우에는 '유치'산업 부문의 신생기업들이 생산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방식을 통해서 말이다.

 

8) 세계 경제 시스템은 개발 도상국들을 '불공평하게' 우대해야 한다.

세계 경제 시스템은 개발도상국들이 자국에 적합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정책 공간'을 넓혀 주는 방향으로 완전히 개편되어야 한다. 일부 선진국들이 주장하듯이 개발도상국에게 '부당하게 유리한' 것이지만 개발도상국이 이미 국제 관계에서 수많은 불이익을 당하는 마당에 이 정도 '봐주기'시스템은 용납될 수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