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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불평등 서적 /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 인상적인 껍데기, 볼품없는 알맹이

by KTCF 2020. 5. 25.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도발적이다. 읽을 책을 고르기 위해 인터넷 서점을 둘러보다 이 책의 제목을 발견했을 때 들었던 생각이다. 그리고 이 생각은 내가 책을 구매하는데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제목에서 느낀 흥미와 관심은 책을 편지 30분만에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역설적 표현을 가르치는 국어책에 등장해도 좋을 이 제목은 안타깝게도 좋은 컨텐츠와 함께하지 못했다. 껍데기는 인상적이었으나, 알맹이는 볼품없었다.

 

이분법적 사고관의 한계

대부분의 문제를 이분법적으로 접근한다. 강자와 약자, 다수와 소수, 기득권과 비기득권 등... 그리고 대립되는 두 집단의 같은 행동에 대한 평가는 전혀 다르다. 언제나 강자는 악이고 약자는 선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관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그런데 갑자기 이 책은 이분법적이 아니라 계층을 다각적으로 봐야된다고도 말한다. 예멘 난민의 사례를 들면서 소수자인 여자가 또 다른 소수자인 예멘 난민을 차별한다고 비판한다. 성별의 차원에서 소수자인 여자와 외국인이자 난민의 신분에서 소수자인 남자, 이를 구분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이 책에서 말한 대부분의 주장이 물거품이 된다. 이분법적 가치관을 통해 문제를 끌어낸 자신을 또 다른 자아가 반박하는 꼴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계층을 다각적으로 봐야하는 대상에서 세대별로도 나누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즘 나타나고 있는 성별 갈등의 모습은 기득권을 누린 적이 없는(혹은 현재 차별을 받고 있는) 젊은 남성과 젊은 여성의 대립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대안제시 부족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고관의 충돌이 있는 상황에서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 애초에 본인의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혹은 가치관은 정립되었으나 그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는 사례를 억지로 끼워맞추게 되면서, 해결방안 제시는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행동이론 등 온갖 현학적인 표현들을 다 끌고 왔지만, 이 책은 결국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에 인용된 이론들을 저자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잘못된 통계자료 사용

또 하나의 큰 문제점은 적절하지 않는 통계자료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주로 남자와 여자의 격차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데, 남녀 임금격차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남녀차별의 사례로 임금격차를 제시하면서 근거로 성별 임금격차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는 많은 사람이 지적했듯, 직업, 직급, 연령, 근로시간 등 의미있는 특징들이 하나도 반영되지 않은 통계 자료이다. 적어도 남녀 임금격차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직업이 같고, 직장이 같으며, 직급, 직책, 호봉, 근로시간, 성과 등이 같은 상황에서의 임금 격차를 갖고 와야한다. 다시 말해, 임금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조건들이 동일하고, 단순히 성별만 다를 때 그 데이터는 성별 임금격차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회사 내 여성 임원비율(현재의 차별을 효과적으로 설명하려면 단순 비율이 아니라 변화율이 더 적절하다), 평균 수능성적(수능시험을 기준으로 공부를 잘한다고 말하려면 1등급의 비율을 가져오는 것이 더 적절하다) 등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가져온 데이터들은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장에만 억지로 끼워맞춰진 모습이다.


쓰다보니 비판이 주가 되었지만,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가장 큰 감정은 아쉬움이었다.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우리 사회의 차별은 분명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책의 제목과 주제는 우리 사회의 차별을 해결하는데 분명 아주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시간을 두고 조금 더 고민하고, 조금 더 보완하여 단순히 얕게 문제만 던지는 책이 아닌 깊이가 있고 방향이 있는 책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정말 아쉬운 알맹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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